하루 종일 잡초를 뽑았는데 뒤돌아보니 또 자라 있군요.

으으... 목덜미가 뻣뻣하고 온몸의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찌나 곡괭이질을 했는지 손바닥은 바위처럼 단단해졌고요.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좀 쉬고 싶습니다. 너무 지쳤어요...
농부가 일을 하지 않으면 어찌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일하지 않으면 몸이 아픈 부인과 어린 딸이 배를 곯아야 합니다.

일을 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쉬려고 해도... 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조금 눈을 감고 쉬려고 하면 어딘가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저를 초조하게 만듭니다.

'멈추지 마!', '눈을 감으면 안 돼!'라고 말이죠. 정신을 차리면 저는 또 곡괭이를 들고 일을 하고 있죠.
이젠 저도 한계에요. 이렇게 계속 일을 하다간 밭에 쓰러져 죽게 생겼어요.

제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불면증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나쁜 귀신이 들린 걸지도 모르겠어요.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니요!

데바님이 조금 도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고통을 약간이라도 덜 수 있으면 됩니다...

데바님들은 오래 사시니 모르는 것이 없겠지요.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저는 무식해서 잘 모르겠지만... 영혼치유사님이라면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전에도 감기에 걸려서 영혼치유사님께 갔더니 좋은 약을 지어 주셨다고요.

영혼치유사님 이름이 뭐였더라? 으... 머리가 아파서 생각이 나지 않네요.

큰 나무가 있는 마을에 가서 치유사님께 전해 주십시오. 농부 헤이르니르가 어딘가 아프다고요.

데바님이 좋은 약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영혼을 치유하러 오신 건 아니로군요.

흙냄새가 나는 걸로 봐서는 언데드가 있는 지역에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군요.

제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영혼 치유 비용은 깎아드리지 못하지만 다른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헤이르니르를 만나셨나 보군요. 그는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언데드예요.

예전에 신관 호르트 님과 함께 그에게 안식을 주려고 찾아갔지만 헤이르니르가 너무 깊은 미망에 빠져 있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스스로 자신이 죽었음을 인식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목소리를 낮추며) 혹시 주술사 세즈네크를 만나 보셨습니까?

주술사란 족속들은 신관이나 영혼치유사가 못하는 일을 해내기도 하더군요.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한번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한테 온 게 그리 달갑지는 않은 표정이구려.

그렇게 꽉 막힌 표정만 짓고 있지 말고 가끔은 내 말에도 귀 기울여 보시오.

템페르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될 테니까.

모두가 우러러보는 주신님이 당신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지는 않거든.
헤이르니르가 누구요?

아, 그 되다 만 언데드 말이군.

언데드가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이 누군지 잊지 않는 현상은 흔치 않아서 주시하고 있었소.

사실 헤이르니르를 도울 방법은 아주 간단하오, 흐흐흐.

하지만 실행하기는 조금 까다로울 수도 있겠는데...

잠시만 기다리시오. 옛 서적을 조금 찾아봐야 해서... 아주 잠깐이면 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