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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페르스 문명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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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페르스 문명, 잊혀진 도시의 재발견




- 엘리시움 고고학협회 엮음.



1. 잃어버린 도시

인테르디카 남부의 가장 높은 고원 지대, 현재의 인테르디카 요새와 수페르스 돌산, 히에론폴리스에 이르는 지역에는 거대한 도시의 흔적이 있다.

먼 옛날 아이온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이 다툼이 없이 평화롭게 지냈고 아트레이아가 낙원이라고 불렀던 시절에 인간이 세운 도시 중 하나이다.

인테르디카의 고원 지대에 살던 고대인들은 스스로를 수페르스 사람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들이 세운 문명도 자연스럽게 수페르스 문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용족이 지배하던 암흑기를 거쳐 천년전쟁 이후에도 번영을 누리던 수페르스 문명은 대파국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대파국의 피해는 매우 컸다. 수페르스 유적뿐 아니라 수많은 도시가 무너졌고 폐허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용족과의 전쟁은 매우 길었고 대파국이라는 재앙 이후 폐허를 복구할 시간도 없이 아인종과의 전쟁, 천마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고대 문명의 수복과 연구는 도외시될 수 밖에 없었다. 전시에는 고고학자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병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페르스 유적도 거의 잊혀진 상태로 있었고 가끔 탐험가의 보고에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이온 탑의 조각이 공중에 떠오르는 사건이 일어나자 수페르스 유적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2. 수페르스의 재발견

아이온 탑의 파편과 관련하여 이상한 현상이 자주 나타났고, 수페르스의 유적 역시 그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곳 중의 하나였다.

수페르스 유적지의 가장 높은 지대에는 거대한 석상이 세워진 큰 건축물이 있었는데 고고학자들은 그것을 수페르스 신전이라고 불렀다.

신전이 있던 자리에 떨어진 아이온 탑의 파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오드의 힘과 함께 어비스로 통하는 문이 열렸던 것이다.

엘리시움에서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아이온의 파편이 있는 곳, 수페르스 신전 위에 인테르디카 요새를 짓기로 결정했다.

엘리시움은 많은 인력과 자원을 제공했고 상부의 명령을 받은 가디언과 어비스로 가려는 데바들이 인테르디카로 몰려들었다.

고대 유적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던 엘리시움 고고학 협회에서 유적 훼손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엘리시움은 요새 건설을 강행했다.

고고학자들의 꾸준한 노력 덕에 유적이 크게 훼손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과거의 모습 그대로 수페르스 신전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테르디카 요새를 건설하는 바람에 묻혀질 뻔한 수페르스 유적이 다시 빛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수페르스 유적의 소식을 들은 많은 학자들이 학회를 찾아왔으며 인력과 연구 자금 조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요새 건설 도중에 많은 유물과 유적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몇몇의 고고학자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결실이었다.

3. 수페르스의 유적들

수페르스 문명의 영향은 수페르스 돌산 전체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페르스는 역사가 깊은 도시라서 여러 시대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지대에 세워진 수페르스 신전을 중심으로 히에론폴리스는 세련되고 우아한 양식을 자랑한다. 낮은 지대로 내려갈수록 건축 양식이 조잡해지거나 종종 색다른 양식을 보인다.

초기의 수페르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고산지대에 살던 사람들의 후예로 문명이라고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시절부터 높고 험준한 언덕 위에 건물을 짓고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협곡 사이에 다리를 놓거나 낮은 지대의 물을 끌어올리는 기술이 발달했다. 축대를 쌓고 고원의 언덕을 깎은 후 물을 끌어다 계단식 농사를 지었던 흔적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아이온의 은총에 힘입어 수페르스 인들이 데바로 각성하면서 수페르스 문명도 꽃을 피웠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진 수페르스 인의 견고한 기술은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지지대로 거대한 원형의 기둥을 사용했고, 아치를 연결해 높은 층의 건물을 쌓았다.

흰 석재를 재료로 사용한 건물은 곡선형의 문양과 사람의 얼굴을 부조하여 장식했다.

도시의 곳곳은 거대한 조형물과 데바를 형상화한 조각품으로 꾸몄는데 그 흔적은 히에론폴리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페르스 문명의 극치를 보여 주는 건물은 역시 현재의 인테르디카 요새가 세워진 수페르스 신전이다.

수페르스 신전은 비교적 늦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신전이 세워진 이유에 관해서는 여러 가설이 많으나 주신의 승리를 축하하며 바쳐진 신전일 거라는 설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둥근 형태의 신전 외벽에는 주신의 형상이 세워져 있으며 그 주변을 둘러싸듯이 날개를 펼친 데바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미적으로 훌륭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초로 인테르디카 요새를 세울 만큼 온전하고 방어적인 기능도 잘 갖춘 고대의 유산이다.

4. 수페르스 문명의 신비

수페르스 문명에 고고학자들의 관심이 쏠렸던 것은 수페르스 문명이 암흑기 이전부터 계속되어 온 인간의 문명이라는 점에 있다.

용족이 힘에 눈을 뜨면서 아트레이아의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려고 했을 때 자신들 외의 다른 종족은 모두 강압하고 문명을 파괴했다.

특히 용족과 우호적이지 않았던 인간의 문명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인간은 발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페르스 유적은 접근이 어려운 고원 지대에 세워졌고 현재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용족의 파괴를 피해 문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때문에 수페르스 문명의 유적은 암흑기와 그 이전의 인간의 생활상을 알 수 있을 몇 안 되는 중요한 단서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수페르스 인이라고 불리던 고원 지대의 사람들은 대파국과 함께 증발이라도 한 듯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수페르스 문명에 관한 기록이나 문서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특히 천마전쟁 이전의 수페르스 문명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수페르스의 연구에 매달린 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고대 인테르디카에 수페르스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교류하던 수페르스 못지 않게 거대한 문명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테르디카의 남부나 동부에서는 고도로 문명화된 유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중심부에서는 아무런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수페르스 문명과 교류했던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 수페르스 문명 연구에도 큰 진척이 있을 것이다.

수페르스와 관련된 가설 중 하나는 전설로만 남아 있는 고대도시 루에 관한 것이다. 고대 문헌에 종종 등장하지만 흔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

수 차례에 걸쳐 탐험가들과 고고학자들이 인테르디카 중부의 밀림과 습지를 샅샅이 탐색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결국 인테르디카 중부에 있었을 미지의 문명은 대파국 때 어비스로 휩쓸려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적인 의견만 제시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비스로 사라졌다고 해도 수많은 어비스의 어느 공간에 있을지 모르는 유적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 흔적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여러 가지 가설만 오가는 수페르스 문명을 비롯한 인테르디카의 문명군의 정체를 확인되는 큰 발견이 될 것이다.

-후기

키스크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으로 엘리시움이 떠들썩하다.

아직 시험 단계라고는 하지만 키스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어비스에서의 고고학 연구가 크게 진척될 것이다.

수페르스 문명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단계이며, 아직 단서를 발견할 기회가 많다.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지만 키스크의 개발로 한 걸음 더 진전되기를 바란다.

어비스를 탐험하는 수많은 고고학자들에게 빛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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