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730179
멜레아그로스의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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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
생명력: 63
공격 반경: 0m

Dialogs:

O월 O일

며칠 전부터 쿠쿠와 포구스가 한 마리씩 사라지고 있다.

떠돌이 칼니프라도 나타났나 싶어 우리를 만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 문이 열려 있고 가축이 몇 마리씩 없어진 상태였다.

가축뿐 아니라 텃밭의 농작물까지 뽑아 가는 걸 보면 단순한 짐승의 짓은 아닌 것 같아 우리 안에서 보초를 서기로 했다.

몇 시간이나 기다렸을까. 숲 속에서 붉은색 눈 한 쌍이 나타나 천천히 다가왔다.

숨을 죽이고 놈이 가까이 오길 기다렸지만 녀석은 낌새를 챘는지 갑자기 숲으로 도망갔다.

재빨리 화살을 날렸지만 결국 놈을 놓치고 말았다. 날이 밝자 숲으로 가는 길목을 살폈다.

분명 화살을 몇 발 맞은 것 같았는데 핏자국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O월 O일

드디어 녀석을 잡았다.

놈은 브라우니 같은 체격에 사나운 메피구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둥이 양쪽에 긴 송곳니가 나 있었는데 가공하지 않고도 칼로 쓸 수 있을 만큼 예리하고 단단했다.

몸 전체에 거칠고 짧은 털이 나 있고 가죽은 고르곤처럼 단단했다.

다이아몬드를 박은 칼로 가죽을 갈라 보니 가죽 바로 아래에 엄지 손가락 두께의 비계가 있었다.

이러니 화살을 맞아도 끄떡없었지. 비상용 봉혼석과 덫을 사용하길 잘 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놈의 소지품 중에 특이한 것이 있었다.

얇은 책이었는데 고대 아트레이아어와 비슷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날짜처럼 보이는 숫자가 있는 걸로 봐서 녀석의 일기장쯤 되는 것 같다.

짐승처럼 보이는데 일기를 쓰다니... 이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O월 O일

놈의 정보를 찾기 위해 엘리시움에 있는 현자의 서고를 찾아갔다.

어떤 책을 찾아야 할지 몰라 한숨을 쉬고 있는데 바토니아란 여자가 다가와 뭘 찾는지 물었다. 녀석의 특징에 대해 알려주자 뭘 말하는지 알겠다며 책 하나를 골라 주었다.

책에는 칼리돈이라는 이름과 주요 서식지가 테오보모스라는 것, 송곳니와 가죽이 꽤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적은 정보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마음 한편으로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 내가 직접 칼리돈을 찾아보는 거야. 한 군데서 50년이나 지냈으니 이제 다른 곳으로 옮길 때도 됐지.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잡화 상인에게 갔다. 그동안 모은 짐승 가죽과 약초를 모두 팔고 봉혼석과 물약, 화살을 잔뜩 샀다.

대충 큐브에 우겨넣고 테오보모스로 데려다 줄 공간 이동사를 찾아 나섰다.

O월 O일

여기에 온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엘리시움에서 테오보모스로 처음 오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하다. 몇 번의 공간 이동으로 메이화링 발굴조합 막사가 있는 곳엔 당도할 수 있었지만 거기서부터 고생의 연속이었다.

프레기온의 화염 때문에 오랫동안 버려진 땅이라 다른 곳으로 가는 비행 경로가 없었고 변변한 지도를 구할 수도 없었다.

야다몽인가 하는 능구렁이에게 큰 돈을 주고 산 고대 지도에 의지해 칼리돈이 자주 출몰한다는 지역을 찾아 나섰지만 지형이 많이 바뀌어서 위험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퓨리 떼에게 죽을 뻔했고 한번은 불의 정령들에게 타 죽을 뻔했다.

가장 화가 치밀었던 것은 탐험가라는 자에게 속아 식량과 돈이 든 짐보따리를 몽땅 도둑맞았을 때의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사실 여기에 자리를 잡기까지도 사연이 많았다.

칼리돈을 관찰하고 싶어 절벽 근처에 세웠던 막사들은 칼리돈의 공격에 쑥대밭이 되었고 결국 불을 두려워하는 칼리돈을 피해 프레기온의 화염 근처에 막사를 짓게 되었다.

O월 O일

칼리돈을 보면서 늘 궁금했던 게 있었다.

잡아도 잡아도 수가 줄어들지 않는 걸 보면 번식력이 대단한데 도대체 어떻게 번식을 하는 걸까. 보기엔 모두 수놈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오늘 그 비밀이 풀렸다. 덩치가 큰 전사 계열이 암컷이었고, 덩치가 작은 술사 계열이 수컷이었던 것이다.

겉보기엔 힘이 좋은 암컷이 무리를 이끌 것 같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살펴본 결과 족장과 주요 세력이 술사 계열인 걸로 보아 수컷의 지위가 상당한 것 같다.

물론 모든 수컷이 술사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수컷 중에서도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놈들만 술사가 되며 재능이 없는 나머지들은 새끼를 돌보는 유모가 되거나 암컷과 마찬가지로 전사가 된다.

하지만 전사가 된다 해도 체력 조건이 암컷에 비해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일찍 죽거나 암컷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무리에서 이탈해 떠돌이가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처음 내가 잡았던 칼리돈도 낙오된 수컷이었으리라.

O월 O일

동틀 무렵 칼리돈 출몰지에 설치해 둔 덫을 살피러 갔다가 칼리돈 몇 마리가 어떤 사람을 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봉혼석을 먹인 화살로 놈들을 쫓고 보니 솜털이 채 가시지 않는 인간 소년이었다. 오래 굶었는지 걸신 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수프를 먹어 치웠다.

결계탑 마을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소년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받아 달라고 사정했다.

소년의 이름은 다니얼, 베르테론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장터에서 만난 카빌이라는 사람과 친형처럼 지내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레파르 혁명단원이었다.

이를 안 신관이 레파르 혁명단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다니얼을 잡으려 했고 겁에 질린 다니얼은 무작정 도망치다 테오보모스까지 왔다고 한다.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몇백 년 동안 혼자 살아서 곁에 누가 있는 게 불편한데...

하지만 다니얼의 선한 눈빛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이번 기회에 제자를 하나 만드는 것도 좋겠지. 제법 눈치도 있고 골격도 단단하니 잘만 가르치면 좋은 사냥꾼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년에게 앞으로 세브리안으로 부르겠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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