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730134
인테르디카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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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바로 각성하는 원인이 다양하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분명히 고통이었을 것이다.

눈을 떠도 감아도 잊혀지지 않는 고통스런 기억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게 했다. 죄책감이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죽어서 편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저주처럼 각성의 순간이 찾아왔다. 죽지 못하는 몸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고통받는 이들을 오드의 흐름으로 돌려보내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널리 알리는 것. 그것이 나의 임무이다.

재앙의 전조는 천천히 다가왔다. 키샤르 부락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메데우스 장원과 타르타론 농장 사람들은 언제 크랄이 쳐들어올지 불안에 시달렸다. 농장주였던 메데우스와 집사였던 카시야스는 요새로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는 에레슈란타에서 마족과 격렬한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기 때문에 요새에서도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이웃 마을의 분위기는 급박했지만 내가 살던 유프로시네 마을은 잠잠했다. 키샤르 크랄이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지만 한편으로는 믿고 있었다.

설마 크랄이 정말 인간의 마을로 쳐들어올 리는 없을 거라고. 혹시 크랄이 침입한다 해도 요새에서 농장과 장원을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유프로시네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 도와줄 거라고.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그저 헛된 희망이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새벽 키샤르 크랄이 타르타론 농장으로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도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랄과 인간의 싸움은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월등한 크랄을 당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타르타론 농장이 쑥대밭으로 변하자 키샤르 크랄은 메데우스 장원으로 달려갔다.

메데우스 장원 사람들도 크랄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남자들이 주축이 되어 농기구를 가지고 크랄에게 대항했지만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유프로시네 마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해가 뜨고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스테논 해안으로 간신히 도망친 여인 하나가 유프로시네 마을로 와서 상황을 알린 것이다.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에서 일어난 긴 비극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농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도 농장 근처로 접근할 수 없었다. 멀리서부터 진동하는 피비린내와 농장을 둘러싼 크랄의 모습을 보고는 겁에 질려 모두들 되돌아온 것이다.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은 입구에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요새로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나 역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그저 크랄이 유프로시네 마을까지 쳐들어오지 않기만을 다섯 주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 사람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그제서야 비로소 느낀 것이다.

요새에서 가디언을 파견했지만 크랄과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마을에도 위기가 닥쳤다.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에서 난 농작물이 유프로시네 마을의 수입의 원천이었는데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가장 먼저 슈고들이 마을을 떠났다. 챈가룽 상단과 산들바람 상회, 검은구름 무역단이 모두 철수했다.

농작물을 거래하던 상인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짐을 나르던 인부들도 일이 없어지자 마을을 떠났다.

배를 만들던 조선공과 선원들도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흥성거리던 마을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의 끝이 아니었다. 진짜 비극은 그 후에 찾아왔다.

차츰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의 비극을 잊어가고 있을 때 파세르타 마을로 갔던 주민 하나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시작의 샘에서 물을 길어 오겠다고 떠난 아가씨 하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나의 연인 일브레인이었다.

일브레인이 돌아오지 않자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친 듯이 마을을 뛰쳐나갔고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 사잇길에서 그녀의 신발을 발견했다.

신발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일브레인의 찢어진 옷자락을 들고 있는 아누바이트가 들어왔다.

나는 주변에 떨어져 있던 몽둥이를 들고 그 아누바이트에게 달려들었다. 분노와 함께 힘이 솟아났다.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며 몽둥이를 휘둘러 아누바이트를 산산이 부쉈다. 주변에 있던 놈들을 모두 처치하고 나니 갑자기 힘이 쫙 빠졌다.

탈진해서 바닥에 주저앉자 그제서야 주변에 흩어진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난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아누바이트의 물건 중에 낯익은 것이 있었다.

어릴 적 친구였던 강게스가 하고 다니던 버클이었다. 내 손으로 선물했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내가 산산이 부순 아누바이트는 바로 크랄의 손에 죽은 친구였던 것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에서 언데드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과거의 이웃 주민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유프로시네 마을 사람들은 언데드를 처치할 수 없었다.

다들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언데드에 관한 것은 입에 담지도 않았고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은 멀찍이 피해 다녔다.

그리고 대대로 마을에 살던 토박이들도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난 심신을 갉아먹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연인이었던 일브레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너무나 컸다.

크랄이 쳐들어올 거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을 도왔다면 일브레인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강게스의 일까지 생각하면 죄책감은 더욱 더 커졌다.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을 때 돕지도 못했는데 이미 죽은 친구를 다시 죽이다니...

결국 나도 마을과 인테르디카를 떠났고 끊임없는 괴로움에 시달리다 데바로 각성했다.

데바가 된 후에 비로소 나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타르타론 농장과 메데우스 장원을 떠도는 언데드를, 과거의 이웃을 오드의 흐름을 돌려보내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들을 죽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그것이 그들을 평안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루 이틀, 일 년 이 년이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리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남은 생은 아주 길기에 언젠가는 이 일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언데드를 오드의 흐름으로 돌려보내는 순간이 바로 내가 해방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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