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적단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아주 평범하게 살았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었지.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애인도 있었어.

그녀와 결혼하려고 아담한 집까지 지었었지.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각성해서 데바가 된 거야.

그래서 판데모니움으로 가게 됐지. 그녀에게 들은 말로는 일단 판데모니움으로 갔다가 인간을 위해 봉사하러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고 하더군.

떠나기 전에 그녀는 정표를 주며 약속했어.

데바로서 최소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이야.

그녀가 떠난 뒤에 나도 마을을 떠나 떠돌다가 이 도적단에 들어오게 됐지.
생각해 봐. 언젠가 죽는 인간인 나와 데바인 그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판데모니움에서 화려하게 살 수도 있는데 나 때문에 시골 마을에서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도 정표로 받은 은반지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더군. 그래봤자 이루어질 수도 없는데...

홧김에 풀숲으로 반지를 던져 버렸는데 후회가 돼서 찾으러 갔더니 없지 뭐야. 주변에 硬壳象鼻虫이 우글거리던데 아무래도 한 놈이 삼킨 것 같아. 하루종일 찾았지만 아직도 못 찾았어.

미안하지만 바쁘지 않으면 은반지 찾는 거 좀 도와줄래?
사실 도적단에 들어온 다음에 그녀의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으니까 도적단 형제들에게는 말하지 마.

그럼 硬壳象鼻虫을 잡아서 은반지를 꼭 좀 찾아 줘.
어떻게... 찾았어?

못 찾았으면 솔직하게 말해.

찾기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도 내게는 사랑의 증표인데...

소중한 물건이 메르디온의 뱃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군.

미안하지만 한번만 더 찾아봐 줄래?
그래! 바로 이 반지야.

반쯤은 단념하고 있었는데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

먼 훗날 혹시라도 만났을 때 그녀에게 정표인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잖아.